서문쉼터
서씨 문중의 쉼터 (徐門쉼터) 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조금 더 감상적으로는 동쪽에 해가 떠오르듯 태어나 한 평생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삶을 정리하며 서해가 바라보이는 서쪽 문(West Gate)으로 들어가서 만나는 西門쉼터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에 각자 마음에 와 닿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또한 서문쉼터를 품은 토성산은 풍수지리 전문가가 말하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평가되고 있다.




(도로명 주소 : 서산시 덕지천로 797)
서산시청 정문 앞에서 승용차로 해미 쪽을 향해 약 7.9km 쯤 달리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웅소성리」란 글씨가 새겨진 육중한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포장 도로를 따라 약 1.4km 정도 가 다 보면 왼쪽 길가에 「독립유공자서병철선생묘소」란 철제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좌측으로 약 30m 쯤 들어가면 산기슭에 후산 선생의 산소가 있다.
<산소 규모>
산소 둘레→9m60cm. 봉분 높이→1m90cm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산소 앞에는 상석(床石)이 놓여있고, 그 앞에는 다시 향로석(香炉石)과 뒤에는 혼유석(魂遊石)이 각각 놓여있다. 상석의 크기는 가로→1m21cm. 세로→81cm. 그리고 두께는 35cm로 되어있다.
또 한 산소 앞 좌우에는 높이 1m60cm로 되어있는 석물(柱石)이 버티고 서있으며, 다시 오른쪽 석물 옆에는 「達成徐公丙撤之墓」라 깊게 새겨진 석비(石碑)가 덩그렇게 서있다.
<석비 전체의 규모>
총 높이→2m39cm. 이 중 비신(碑身)의 높이→1m60cm. 가로→56cm. 폭→29cm. 가첨석() 높이→58cm. 가로→91cm. 폭→63cm. 그리고 대석 높이→21cm. 가로→91cm. 세로→61cm로 이루어졌는데, 비신만 오석(烏石)으로 되어있고 그 외는 모두 화강석으로 되어있다.







토성산에는 서문쉼터를 보호하기 위한 벽돌담이 축조되어있다 낙엽쌓인 숲속을 거닐면 고궁 뜰안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서문쉼터 벽돌담 축조의 내력:
서문쉼터가 자리한 토성산의 서쪽 끝자락은 분지 형태로 되어 있어서 여기를 둘러싼 토성이 축조되었던 형태가 존재하고 토성 안에 소규모의 군영이 차려졌던 흔적이 발견되는데 주로 취사용으로 추정되는 깨어진 식기, 항아리 등이다.
체계적인 발굴조사 여부는 정부 차원에서 정하는 일인데 아직 정부에서 여기를 문화유적지로 지정하여 본격적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인접한 산자락에 식품공장을 인가하여 준 상황으로 보아 유의미한 유적지보존 지역으로는 지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토성유적지 등 고고학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이 곳을 무단출입하고 산지를 훼손하는 문제가 심각하여 후산선생 유족들의 결정으로 사유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로 관청의 허가를 받아서 1992년에 높이 약1.5m의 벽돌담 축조공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벽돌담의 총길이는 330m 이고 축조년도는 1992년 이다.
토성산일대에는 인접한 태안의 해변을 통하여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고자 구축된 토성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이 2016년에 발간된 위 책자에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제목: 서산 웅소성리유적, -가경고고학연구소 발행-
서씨 문중의 쉼터 (徐門쉼터) 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조금 더 감상적으로는 동쪽에 해가 떠오르듯 태어나 한 평생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삶을 정리하며 서해가 바라보이는 서쪽 문(West Gate)으로 들어가는 西門쉼터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에 각자 마음에 닿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또한 서문쉼터를 품은 토성산은 풍수지리 전문가가 말하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평가되고 있다.




(도로명 주소 : 서산시 덕지천로 797)
서산시청 정문 앞에서 승용차로 해미 쪽을 향해 약 7.9km 쯤 달리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웅소성리」란 글씨가 새겨진 육중한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포장 도로를 따라 약 1.4km 정도 가 다 보면 왼쪽 길가에 「독립유공자서병철선생묘소」란 철제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왼쪽으로 약 30m 쯤 들어가면 산기슭에 후산 선생의 산소가 있다.
<산소 규모>
산소 둘레→9m60cm. 봉분 높이→1m90cm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산소 앞에는 상석(床石)이 놓여있고, 그 앞에는 다시 향로석(香炉石)과 뒤에는 혼유석(魂遊石)이 각각 놓여있다. 상석의 크기는 가로→1m21cm. 세로→81cm. 그리고 두께는 35cm로 되어있다.
또 한 산소 앞 좌우에는 높이 1m60cm로 되어있는 석물(柱石)이 버티고 서있으며, 다시 오른쪽 석물 옆에는 「達成徐公丙撤之墓」라 깊게 새겨진 석비(石碑)가 덩그렇게 서있다.
<석비 전체의 규모>
총 높이→2m39cm. 이 중 비신(碑身)의 높이→1m60cm. 가로→56cm. 폭→29cm. 가첨석() 높이→58cm. 가로→91cm. 폭→63cm. 그리고 대석 높이→21cm. 가로→91cm. 세로→61cm로 이루어졌는데, 비신만 오석(烏石)으로 되어있고 그 외는 모두 화강석으로 되어있다.




기존에 산재 되어있던 조상의 묘를 납골 이장하여 가족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토성산에는 서문쉼터를 보호하기 위한 벽돌담이 축조되어있다. 낙엽쌓인 숲속을 거닐면 고궁 뜰안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서문쉼터 벽돌담 축조의 내력:
서문쉼터가 자리한 토성산의 서쪽 끝자락은 분지 형태로 되어 있어서 여기를 둘러싼 토성이 축조되었던 형태가 존재하고 토성 안에 소규모의 군영이 차려졌던 흔적이 발견되는데 주로 취사용으로 추정되는 깨어진 식기, 항아리 등이다.
체계적인 발굴조사 여부는 정부 차원에서 정하는 일인데 아직 정부에서 여기를 문화유적지로 지정하여 본격적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인접한 산자락에 식품공장을 인가하여 준 상황으로 보아 유의미한 유적지보존 지역으로는 지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토성유적지 등 고고학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이 곳을 무단출입하고 산지를 훼손하는 문제가 심각하여 후산선생 유족들의 결정으로 사유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로 관청의 허가를 받아서 1992년에 높이 약1.5m의 벽돌담 축조공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벽돌담의 총길이는 330m 이고 축조년도는 1992년 이다.
토성산일대에는 인접한 태안의 해변을 통하여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고자 구축된 토성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이 2016년에 발간된 위 책자에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제목: 서산 웅소성리유적 -가경고고학연구소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