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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혁/재단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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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 한독의료재단 설립자
벽봉 서 정 익 박사(1915~2014)
설립자 소개

1915년 서산시 해미면 억대리에서 출생하시어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부친의 곁을 일찍이 떠난 후 독학으로 의사 고시에 합격하여 약관 25세에 의사의 꿈을 이루었고,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서 1942년부터 2년간 수련의로 재직하였으며 재직 중 같은 병원에 약사로 근무하던 공옥화(孔玉花) 여사를 만나 혼인에 이르렀으며 혼인 후 일본 동경의과대학에 유학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쟁후인 1954년부터 3년간 수도경찰병원 병원장으로 재직하였고 1960년 뉴욕 벨뷰 메디칼센터에서 2년간, 1962년 독일 마인츠병원에서 2년간 재직하시었다.
1964년 광화문 네거리에 연합병원을 개원하시어 10년간 의술을 널리 행하였고 1974년에는 의료법인 한독의료재단을, 1982년에는 의료법인 영남의료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들 비영리 의료법인에서는 영세민 무료진료, 외상후유증연구소 개설, 언청이 무료성형수술 등의 무료치료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와 같은 공로로 1987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선친 애국지사 후산 서병철선생의 독립유공자 보훈연금과 사재를 보태어 후산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수많은 인재들의 학업을 후원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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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익 루까 & 공옥화 에프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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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봉선생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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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뒷면의 글>
seojungik_profile.png의료법인 한독의료재단 설립자  벽봉 서 정 익 박사(1915~2014)

설립자 소개

1915년 서산시 해미면 억대리에서 출생하시어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부친의 곁을 일찍이 떠난 후 독학으로 의사 고시에 합격하여 약관 25세에 의사의 꿈을 이루었고,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서 1942년부터 2년간 수련의로 재직하였으며 재직 중 같은 병원에 약사로 근무하던 공옥화(孔玉花) 여사를 만나 혼인에 이르렀으며 혼인 후 일본 동경의과대학에 유학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쟁후인 1954년부터 3년간 수도경찰병원 병원장으로 재직하였고 1960년 뉴욕 벨뷰 메디칼센터에서 2년간, 1962년 독일 마인츠병원에서 2년간 재직하시었다.
1964년 광화문 네거리에 연합병원을 개원하시어 10년간 의술을 널리 행하였고 1974년에는 의료법인 한독의료재단을, 1982년에는 의료법인 영남의료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들 비영리 의료법인에서는 영세민 무료진료, 외상후유증연구소 개설, 언청이 무료성형수술 등의 무료치료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와 같은 공로로 1987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선친 애국지사 후산 서병철선생의 독립유공자 보훈연금과 사재를 보태어 후산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수많은 인재들의 학업을 후원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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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익 루까 & 공옥화 에프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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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봉선생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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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뒷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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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네거리 이순신장군 동상 옆에 신축되었던 연합병원(1964년 신축)>
- 현재에도 외관만 바뀌어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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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중림동으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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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 수여년도 1987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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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독의료재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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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한독의료재단 
  

한독의료재단 설립일 1978. 9. 15


설립발기인 

이사장  서 정 익

이사  임 승 민 

 이사  최 건 섭

이사  송 정 현 

 이사  서 경 석

감사  박 승 규 

 감사  공 우 규


 한독의료재단 이사진 -2024. 3월 기준 

                

이사장

서 화 석

의학박사

상임이사

서 경 석

보건학박사

이 사

임 웅 생

의학박사

이 사

서 준 원

사업가

이 사

김 성 영

교육가

이 사

임 승 택

의학박사

이 사

김 천 기

의학박사



역대 이사장 재임기간
 
achieve_01.png 서 정 익  1978 ~ 1998
achieve_02.png 서 경 석  1999 ~ 2006
no_image.png 이 경 섭  2006 ~ 2014
achieve_03.png 서 화 석  2014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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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마음의 메달을 수여합니다◈


 

한독의료재단 설립과 명칭의 배경 :  


서정익 박사는 1962년부터 2년간 독일(당시 '서독'으로 불리던 서부독일) 마인츠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이때 소아과의사로 근무하던 이수길 박사를 만나서 친분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1964년 한국으로 돌아와 광화문 사거리에 '연합병원'을 개원한 후에도 꾸준히 교류하여 왔던 두 사람은 한국과 독일의 가교 역할을 하기로 약속하고 한국과 독일 양국에서 '한독협회'를 만들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수길 박사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면서(1967년 동백림간첩단사건) 잠시 뜻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죄가 없음이 밝혀진 이수길 박사는 사회봉사활동을 재개하였고  한국에서 간호사를 데려와 독일의 요양병원에 취업을 시키는이른바 파독간호사의 대부가 되었고 서정익 박사는 이를 한국에서 지원하는 파트너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74년에 연합병원을 남대문로5가로 이전하면서 병원명칭을 '한독병원'으로 바꾸었다.   

이수길박사의 한독협회는 선천성 심장기형아들을 선발하여 무료수술을 지원하였고서정익 박사는 선천성 구순구개열(언청이) 어린이들의 무료수술을 지원하였다

1978년에는 이수길 박사와의 약속대로 개인병원이었던 한독병원을 국가에 출연하며 한독의료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알려지며 두 사람은 같은 날 (1987. 11. 11)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게 되었다.  

한편 원래 천주교 세례교인이었던 두 분(세례명 루까)  함께  같은 날(1998. 4. 16)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견진성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수길박사의 주선으로 마인츠에 있는 성빈센즈병원과 한독의료재단병원은 1992년에 자매결연을 맺은 바 있다.

이수길박사의 헌신적이며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저서 '한강과 라인강위에 무지개다리를 놓다' -1997년 지식산업사 발간,  '개천에서나온 용' -2007 리토피아발간2권의 자서전에 재미있고 자세하게 쓰여있다.

*이수길박사는 2023113일 영면에 들었다*

3aca55fc5b2e39bbfe8a834eafc7cf06_1715755546_5651.jpg이수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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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빈센즈병원을 방문한 한독의료재단 임원들과 함께...

좌로부터, 서경석 전이사장, 빈센즈병원장, 서화석 현이사장  빈센즈병원 부원장, 이수길박사 부부 



비하인드 스토리 Ⅰ / BEHIND STORY 

앞서 소개된 약력에서 보신 바와 같이 벽봉 선생은 한독의료재단 외에도 의료법인 영남의료재단을 설립하여 의료취약지역인 경상남도 밀양에 1982년도에 200병상 규모의 영남병원을 개원하였다.

문중의 조카되는 서공석 신부(당시 부산 메리놀병원장)의 거듭된 권유를 받아들여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시를 회상하셨다.

또한 거의 같은 시기에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인 오순절 평화의 마을이 밀양 삼랑진에 개원되었고 원장 신부로 부임한 오수영 신부와 함께 3인은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봉사에 최선을 다하여왔다.

중소도시인 밀양에서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유일한 종합병원 간판을 유지하려면 수익성이 없는 진료과도 필수적으로 운영을 해야 했기에 경영상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광산노동자들의 직업병인 진폐증 환자 요양기관으로 지정되어 환자들을 보살펴 왔으나 결국 2015년 누적적자에 더하여, 산업재해 환자들의 감독기관인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사로부터 터무니없는 부당한 제재를 받으며 영남의료재단 영남병원은 운영중단에 이르게 되었다.  영남병원의 진료중단 사태는 국가공무원들의 서투른 행정이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기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당시에 회자되었다.   

[계속보기클릭 / READ MORE...CLICK HERE]

035282bfe751c7d520f4c5ce87573d6e_1716444284_1325.jpg서공석 신부

035282bfe751c7d520f4c5ce87573d6e_1716445145_5637.jpg오수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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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영남의료재단 영남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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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숙모니카,서정익루까, 추기경님,
공옥화에프렌,서경석실베리오 

 

e801b213fb62a461ab31716f0800a9d1_1717121834_442.jpg 오수영 신부님 주례의 혼인성사 for 서장원 & 박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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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네거리 이순신장군 동상 옆에 신축되었던 연합병원(1964년 신축)>
- 현재에도 외관만 바뀌어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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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 수여년도 198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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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중림동으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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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독의료재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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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한독의료재단

설립발기인 

이사장  서 정 익

이사  임 승 민 

 이사  최 건 섭

이사  송 정 현 

 이사  서 경 석

감사  박 승 규 

 감사  공 우 규


한독의료재단 이사진 -2024. 3월 기준 

                       

이사장

서 화 석

의학박사

상임이사

서 경 석

   보건학박사

이 사

임 웅 생

    의학박사

이 사

서 준 원

    사업가

이 사

김 성 영

    교육가

이 사

임 승 택

   의학박사

이 사

김 천 기

   의학박사


역대 이사장 재임기간

 
achieve_01.png서 정 익
1978 ~ 1998
achieve_02.png서 경 석
1999 ~ 2006
achieve_04.png이 경 섭
2006 ~ 2014
achieve_03.png서 화 석
2014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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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마음의 메달을 수여합니다◈


한독의료재단 설립과 명칭의 배경 :  

서정익 박사는 1962년부터 2년간 독일(당시 '서독'으로 불리던 서부독일) 마인츠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이때 소아과의사로 근무하던 이수길 박사를 만나서 친분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1964년 한국으로 돌아와 광화문 사거리에 '연합병원'을 개원한 후에도 꾸준히 교류하여 왔던 두 사람은 한국과 독일의 가교 역할을 하기로 약속하고 한국과 독일 양국에서 '한독협회'를 만들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수길 박사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면서(1967년 동백림간첩단사건) 잠시 뜻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죄가 없음이 밝혀진 이수길 박사는 사회봉사활동을 재개하였고  한국에서 간호사를 데려와 독일의 요양병원에 취업을 시키는,  이른바 파독간호사의 대부가 되었고 서정익 박사는 이를 한국에서 지원하는 파트너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74년에 연합병원을 남대문로5가로 이전하면서 병원명칭을 '한독병원'으로 바꾸었다.   

이수길박사의 한독협회는 선천성 심장기형아들을 선발하여 무료수술을 지원하였고,  서정익 박사는 선천성 구순구개열(언청이) 어린이들의 무료수술을 지원하였다.  

1978년에는 이수길 박사와의 약속대로 개인병원이었던 한독병원을 국가에 출연하며 한독의료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알려지며 두 사람은 같은 날 (1987. 11. 11)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게 되었다.  

한편 원래 천주교 세례교인이었던 두 분(세례명 루까)은 함께  같은 날(1998. 4. 16) 명동성당에서 故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견진성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수길박사의 주선으로 마인츠병원과 한독의료재단병원은 1992년에 자매결연을 맺은 바 있다.

이수길박사의 헌신적이며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저서 '한강과 라인강위에 무지개다리를 놓다' -1997년 지식산업사 발간,  '개천에서나온 용' -2007 리토피아발간,  이 2권의 자서전에 재미있고 자세하게 쓰여있다.  

*이수길박사는 2023년 1월 13일 영면에 들었다*

3aca55fc5b2e39bbfe8a834eafc7cf06_1715754646_7898.jpg이수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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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빈센즈병원을 방문한 한독재단 임원들과 함께...

좌로부터 서경석 전이사장, 빈센즈병원장, 서화석 현이사장, 빈센즈병원 부원장, 이수길박사 부부


비하인드 스토리 Ⅰ / BEHIND STORY 

앞서 소개된 약력에서 보신 바와 같이 벽봉 선생은 한독의료재단 외에도 의료법인 영남의료재단을 설립하여 의료취약지역인 경상남도 밀양에 1982년도에 200병상 규모의 영남병원을 개원하였다.

문중의 조카되는 서공석 신부(당시 부산 메리놀병원장)의 거듭된 권유를 받아들여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시를 회상하셨다.

또한 거의 같은 시기에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인 오순절 평화의 마을이 밀양 삼랑진에 개원되었고 원장 신부로 부임한 오수영 신부와 함께 3인은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봉사에 최선을 다하여왔다.

중소도시인 밀양에서 지역사회 주민을 위하여 종합병원 간판을 유지하려면 수익성이 없는 진료과도 필수적으로 운영을 해야 했기에 경영상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광산노동자들의 직업병인 진폐증 환자 요양기관으로 지정되어 환자들을 보살펴 왔으나 결국 2015년 누적적자에 더하여산업재해 환자들의 감독기관인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사로부터 터무니없는 부당한 제재를 받으며 영남의료재단 영남병원은 운영중단에 이르게 되었다.  영남병원의 진료중단 사태는 국가공무원들의 서투른 행정이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기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당시에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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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5282bfe751c7d520f4c5ce87573d6e_1716444284_1325.jpg서공석 신부035282bfe751c7d520f4c5ce87573d6e_1716445145_5637.jpg오수영 신부

755c702a7324feff2836d4766a72f56e_1716594185_5877.JPG의료법인영남의료재단 영남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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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영 신부님 주례의 혼인성사 for 서장원 & 박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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