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봉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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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벽 봉 곡 ⌺
⌺ ⌺
⌺ 희망과 정열은 노도와 같이 ⌺
⌺ 장부의 의지와 투지 높인다 ⌺
⌺ ⌺
⌺ 양산에 맹세할 때 백구 날고 ⌺
⌺ 황해에 맹세할 때 황파 일다 ⌺
⌺ ⌺
⌺ 내가 맡은 사명 잊지 말고 ⌺
⌺ 강철 같은 초지 변치 말고 ⌺
⌺ ⌺
⌺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
⌺ 굳세고 힘차게 가리 나가리 ⌺
⌺ ⌺
⌺ 1962년 壬寅元旦, 碧峰曲을 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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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정열이 怒濤(노도, 성난파도)와 같이 밀려오며 丈夫(장부, 사나이)의 의지와 투지를 높이고, 양산(인왕산을 칭함)에서 맹세(의료사업에 대한 다짐)할 때는 白鷗(백구, 흰비둘기)가 날아올랐고, 黃海(황해, 고향인 충남서산앞바다 서해)에서 맹세할 때는 荒波(황파, 거친파도)가 일어나 답하였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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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벽 봉 곡 ⌺
⌺ 희망과 정열은 노도와 같이 ⌺
⌺ 장부의 의지와 투지 높인다 ⌺
⌺ 양산에 맹세할 때 백구 날고 ⌺
⌺ 황해에 맹세할 때 황파 일다 ⌺
⌺ 내가 맡은 사명 잊지 말고 ⌺
⌺ 강철 같은 초지 변치 말고 ⌺
⌺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
⌺ 굳세고 힘차게 가리 나가리 ⌺
⌺ 1962년 壬寅元旦, 碧峰曲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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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碧峰(벽봉) 서정익 박사께서 1962년 임인년 새해 아침, 인왕산에 올라 광화문 네거리 연합병원 신축 개원의 감회를 떠오르는 시상과 8줄 운율에 담아 詩를 지었고 이를 碧峰曲(벽봉곡)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희망과 정열이 怒濤(노도, 성난파도)와 같이 밀려오며 丈夫(장부, 사나이)의 의지와 투지를 높이고, 양산(인왕산을 칭함)에서 맹세(의료사업에 대한 다짐)할 때는 白鷗(백구, 흰비둘기)가 날아올랐고, 黃海(황해, 고향인 충남서산앞바다 서해)에서 맹세할 때는 荒波(황파, 거친파도)가 일어나 답하였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떤 인연으로 어쩌다 보니 한독의료재단에서 일하게 된 후산한의원 홍성민 원장입니다.
충청(남)도에서는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만해 한용운과 같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자랑스러운 분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후산선생님을 생각하면 적선지가필유여경이라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積善之家必有餘慶(적선지가필유여경)이라는 주역의 내용인 즉, 선을 행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복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착한 일을 계속(繼續)해서 하면 복이 자신(自身) 뿐만 아니라 자손(子孫)에까지도 미친다는 말입니다.
후산 선생님께서는 비록 당대에는 고문등 온갖 고초를 겪으시면서 험난한 인생을 사셨지만 그의 고난의 씨앗이 결국 아드님인 벽봉 선생님대에 이르러서 화려하게 꽃을 피게 되었고, 한독의료재단이란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후산 선생님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사진속의 모습만 봐도 그의 인품과 선비정신, 독립운동에 대한 불굴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의지와 모범적인 삶의 태도는 후세 대대로 귀감이 될 것입니다.
벽봉 선생님 행적을 조사하니 그는 의사고시를 독학으로 합격한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그는 선친과 다르게 일본을 알고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동경대학 의대에 유학까지 갔으니 적진을 향해서 그냥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어리석음 같은 것이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의 발로였습니다.
그래서 벽봉선생님께서는 정부에 여러 공훈을 인정받아 2개 의료재단을 허가 받은 전대미문의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선친인 후산 선생님은 독립운동의 공적이 있어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감추었으며, 혀를 깨물고 벙어리처럼 행동하는등 기지도 가지는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청개구리처럼 자신의 업적을 알리지 말라는 본인의 의사와 반하게 후산 선생님의 업적을 더 알리고 더 후세에 길이 남길 역사로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며 앞으로 더 후산, 벽봉 선생님의 생애와 업적의 찬란한 금자탑을 발굴하고자 합니다.
오동은 늙어도 늘 그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동안을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번이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다시 새 가지가 나온다
- 신흠(申欽), 1566(명종21) ~ 1628(인조6)
매화는 일생동안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百折不屈백절불굴의 애국 독립지사 후산 선생님을
회고하면 생각되는 말이다.
원장 홍 성 민
어떤 인연으로 어쩌다 보니 한독의료재단에서 일하게 된 후산한의원 홍성민 원장입니다.
충청(남)도에서는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만해 한용운과 같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자랑스러운 분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충성 忠충이란 글자가 헛되게 이름붙이지 않았을 것이며 또 하나의 거대한 후산이란 거인이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후산선생님을 생각하면 적선지가필유여경이라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積善之家必有餘慶(적선지가필유여경)이라는 주역의 내용인 즉, 선을 행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복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착한 일을 계속(繼續)해서 하면 복이 자신(自身) 뿐만 아니라 자손(子孫)에까지도 미친다는 말입니다.
후산 선생님께서는 비록 당대에는 고문등 온갖 고초를 겪으시면서 험난한 인생을 사셨지만 그의 고난의 씨앗이 결국 아드님인 벽봉 선생님대에 이르러서 화려하게 꽃을 피게 되었고, 후산 의료재단이란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후산 선생님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사진속의 모습만 봐도 그의 인품과 선비정신, 독립운동에 대한 불굴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의지와 모범적인 삶의 태도는 후세 대대로 귀감이 될 것입니다.
벽봉 선생님 행적을 조사하니 그는 의사고시를 독학으로 합격한 내용이 나옵니다. 황하에 전설처럼 존재하는 등용문登龍門이란 험준한 강물을 거꾸로 가는 잉어가 용이 되는 것처럼 무척 합격이 어려운 시험인데도 합격을 한 것을 보면 명석한 머리와 대단한 인내심의 결함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또한 그는 선친과 다르게 일본을 알고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동경대학 의대에 유학까지 갔으니 적진을 향해서 그냥 돌격하는 장수의 모습도 지니고 있습니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같은 어리석음 같은 것이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의 발로였습니다.
그래서 벽봉선생님께서는 정부에 여러 공훈을 인정받아 2개 의료재단을 허가받은 전대미문의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선친인 후산 선생님은 독립운동의 공적이 있어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감추었으며, 혀를 깨물고 벙어리처럼 행동하는등 기지도 가지는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청개구리처럼 자신의 업적을 알리지 말라는 본인의 의사와 반하게 후산 선생님의 업적을 더 알리고 더 후세에 길이 남길 역사로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며 앞으로 더 후산, 벽봉 선생님의 생애와 업적의 찬란한 금자탑을 발굴하고자 합니다.
오동은 늙어도 늘 그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동안을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번이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다시 새 가지가 나온다
- 신흠(申欽), 1566(명종21) ~ 1628(인조6)
매화는 일생동안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百折不屈백절불굴의 애국 독립지사 후산 선생님을 회고하면 생각되는 말이다.
원장 홍 성 민